1월 6일까지 갤러리 마리 9인전
[서울=뉴스프리존] 편완식 미술전문기자=요즘 미술계의 새로운 현상중에 하나는 애니메이션 같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언뜻보면 1950년대 등장한 팝아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광고 TV 영화 등 대중문화의 수동적 변용에 그치지 않는다. 디지털이미지를 능동적으로 창출하고 그것을 다시 아나로그적 재현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꿈과 이상,이 시대 새로운 신화와 같은 상상의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화폭에 옮겨지고 있는 모습이다. 팝아트 시대의 이미지 대량복제와도 결을 달리하고 있다. ‘백년의 고독’으로 유명한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떠올리게 해준다.

1월 6일까지 갤러리 마리에서 열리는 9인전은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면 흥미로운 전시다. 디지털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들을 아날로그 화면에 펼쳐낸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만들어진 리얼리즘이라 해도 무방해 보인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하이브리드 리얼리즘’ 전시라 하겠다.

김원규 작가는 고대 토르소를 연상시키는 노출된 허벅지, 속옷으로 윤곽만 드러낸 사타구니와 유방을 하나의 세트처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대중 광고나 팝아트가 평평한 색면에 검정 윤곽선을 둘러 각인 효과를 배가하는 윤곽선 마저 제거했다. 대신 디지털작업으로 색면의 점증적인 명도 조절로 양감을 넣었다. 관능미는 은은하게 남고 묘한 진중함의 리얼리티까지 구현하고 있다.

디지털 세대의 김펄 작가는 오히려 산밑 맛집 같은 작업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자리는 옹색하고 화장실도 꼬질한 집. 무심히 툭나온 그릇에 담긴 음식을 한 젓가락 뜨면 방금까지 머리통을 꽉 채웠던 불쾌하고 막막한 불신과 축축하고 밀도높은 주방 냄새까지 잊게 만드는 그런 맛집같은 작품이다. 디지털이미지 세례를 받은 세대지만 넘쳐나는 일상의 이미지들로 된장국을 끓여 내고 있다.

김현숙 작가의 작품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다. 일상들을 동화처럼 나열한 화면은 오히려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그림자는 공간을 나누기도 하고 현실과 꿈을 대비한다. 어둠을 내포하나 존재의 내면과 무의식적 욕망을 형상화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메타버스 공간을 보는 듯하다.

만욱 작가는 동반자로서의 반려견과 화폭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일상의 엄마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반려견과 끈끈한 형제애로 얽히고 싶어 한다. 인간가족 내 의무로 아우러지는 은폐된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모지선 작가는 넘실대는 푸른 바다에서 등푸른 커다란 고래와 신나고 즐거운 음악회를 열고 있다. 작가는 음악 속에 빠져있을 때 시공을 초월한다. 흐르는 음률은 산, 바다, 우주라도 거침없이 달려간다. 이번엔 바다로 달려왔다.

베리킴 작가는 우주 속 어느 행성에서 온 외계인처럼 잠깐 지구에 머물며 지구인들의 행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발칙한 통찰력으로 그것들을 그림으로 기록하고 있다. 수만가지 다양한 색들과 특이한 형태로 그녀만의 일러스트레이션 세계를 구축한다. 지구인들과 소통하며 모두가 행복한 알록달록한 지구가 되길 꿈꾼다.

여동헌 작가는 어린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비롯해 온갖 대중매체에서 익히 보았던 행복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로 동화적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축제행렬과 전통적인 혼례장면이 더해지면서 ‘행복 부적’같은 느낌을 준다. 미술은 본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이미지안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기이한 욕망을 거느려왔다. 이미지는 본래 마술이었다. 작가는 이 시대의 ‘행복 부적’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잠산 작가의 그림 속 소녀는 별에서 유일하게 피어난 장미꽃 한 송이다. 호기심 많은 소녀는 우리가 알던 곳, 혹은 알지 못했던 내면의 깊은 곳까지 마주하며 바라본다. 머나먼 별에서 떠나온 장미꽃 한 송이는 지금 여행 중이다.
Q.rock(송규락) 작가는 투명 비닐(일명 봉다리)에 담겨진 모든 자연물, 인공물의 오브제를 극사실로 묘사한다. 투명 비닐에 담겨진 오브제는 마치 쇼윈도에 진열된 낱개 포장처럼 소비와 소유를 자극하는 욕망의 기호다. 작업은 겹겹이 수많은 레이어로 쌓는 디지털 드로잉 과정을 거처 아날로그적 리터치로 마무리 된다. 전형적인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하이브리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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