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과 겸손
상태바
교만과 겸손
  • 김덕권
  • 승인 2022.11.01 22: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만(驕慢)과 겸손(謙遜)은 무엇일까요? 교만은 잘난 체하는 태도로 겸손함이 없이 건방짐을 말합니다. 그리고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가 있음이지요.

제가 젊어 한동안 교만에 빠져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외면하는데 잘 될 일이 있었겠는 지요? 그러나 천만다행하게도 일원대도(一圓大道)를 만나 정반대로 산 결과, 이제는 여생을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에 겸손보다 더 큰 덕은 없습니다. 교만은 내재 된 많은 지식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겸손은 적은 지식으로도 생을 풍요롭게 하지요. 어떻습니까? 많은 지식 보다는 겸손이 낫고, 겸손한 침묵보다는 행동이 낫습니다.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는 것은 교만의 사치요,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하는 것은 겸손의 저축입니다.

오만(傲慢)한 마음에는 더이상 채울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겸손의 그릇은 늘 비어 있어서 채울 준비가 되어 있지요. 교만을 버리고 겸손으로 내려갈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올라간 것입니다. 내려갈 수 있는 마음이 행복합니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어느 학교에 하루는 한 부자가 찾아왔습니다. 학교 마당 한구석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칠장이에게 교장실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칠장이는 교장실 위치를 친절히 가르쳐 주며 한 시간쯤 후에 교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일러주었지요.

그 부자가 한 시간 후에 교장실을 찾아갔습니다. 비록 옷은 갈아입었지만 분명히 칠장이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칠장이인 교장에게 학교에 긴히 필요한 금액을 자세히 묻고는 돌아갔고, 얼마 후 그 금액 전액을 기부금으로 보내왔습니다. 교장이면서도 작업복을 입고 허드렛일을 하는 교장의 겸손에 감동이 되었기 때문이었지요.

이런 성품과 삶의 자세를 겸손이라 부릅니다. 어느 미군 병사가 버스를 타고 가면서 옆 좌석에 앉은 남자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제일 민주적인 국가이죠? 일개 시민이라도 원한다면 백악관에 가서 대통령을 만나 여러 가지 문제를 논의할 수 있으니까요.” 하고 교만을 떨었습니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았던 스웨덴 사람이 조용히 말하기를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스웨덴에서는 왕이 일반 평민들과 함께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니까요” 그리고 얼마 후 그 스웨덴 사람이 내리자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미군 병사에게 방금 버스에서 내린 그 남자는 바로 ‘주스타브 아돌프 6세’ 스웨덴 국왕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삼국시대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은 우리 역사의 이름난 장군으로 초등학교 학생들도 그의 이름을 다 알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재상이며 장군으로 유명한 그가 ‘살수(薩水)’에서 수나라의 백만대군을 물리치고 대승하여, 평양으로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올 때 영양왕은 친히 성 밖의 들판까지 마중을 나갔었습니다.

그리고 왕은 친히 꽃가지를 그의 투구에 꽂아 주며 금은보화를 하사했습니다. 신하로서 그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 거라 했습니다. 그러나 을지문덕 장군은 그와 같은 영광을 사양하고 왕 앞에 엎드려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것이었습니다.

“상감마마의 귀중한 백성이요, 또 여러분의 소중한 아들들이며, 남편인 고구려의 청년들을 수없이 전장에서 잃고 얻은 승리를 나 일 개인의 공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이 나라의 진정한 영웅들은 여기에 살아서 돌아온 저 을지문덕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는 산과 들에서 산화(散華)한 뒤 돌아오지 못하는 용사들입니다.”

을지문덕 장군은 평양에 돌아오는 즉시로 왕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고향인 증산으로 돌아가 베옷을 입고 여생을 근신하면서 지내 겸손의 본을 보였다고 합니다. 고요한 호수의 물속에서는 무엇이든 가장 높은 물체가 가장 낮게 투영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높은 나무일수록 더 낮게 비치지요.

사람들이 사는 게 그렇습니다. ‘천지를 모르고 깨 춤을 추고’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며’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 넓을 줄 모르기에’ 교만을 떠는 것입니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고 ‘내가 고쳤다.’ 고 교만을 떤다면 어떨까요? 수많은 검사장비, 의료 기구는 누가 만들었고, 약은 누가 만들었으며, 자신의 의학지식은 누구에서 배운 것일까요? 도대체, 내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 많은 것들은 제쳐 놓고 ‘나’를 앞세운다면, 그게 배은망덕의 본이며, 남의 공을 오로지 자기 것으로, 착복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그 뿐만 아닙니다. 천지의 은혜, 부모의 은혜, 여러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며, 또한 세상살이에서 먹고 입는 그 모든 것들이, 수많은 동포의 공덕이며, 법률의 은혜가 없었더라면, ‘나’라는 인간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공덕(功德)과 음덕(陰德)을 무시하고 ‘내가 잘 나서’ 라 말한다면 그것이 ‘네 가지 큰 은혜(四恩)’에 대한 배은이고, 망 덕(亡德)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우리 모두 교만을 버리고 겸손으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단기 4354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10월 3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은 모든 기자들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 하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해당 언어로 번역 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