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수정주의라는 망령은 어떻게 생성되고 유포되고 생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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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수정주의라는 망령은 어떻게 생성되고 유포되고 생존할까?
  • 김종익 기자
  • 승인 2022.10.17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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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부정론과 음모론 ②

다케이 아야카武井彩佳
1971년생. 가쿠수인여자대학 국제문화교류학부 교수. 독일 현대사․홀로코스트 연구. 『역사 수정주의―히틀러 찬미, 홀로코스트 부정론부터 법 규제까지』, 『‘화해’의 real politics―독일인과 유대인』, 『유대인 재산은 누구 것인가―홀로코스트에서 팔레스티나 문제로』 등의 저서가 있다.

■ 논리와 확산

그런데 역사 부정론과 음모론의 논리와 기능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이제까지도 부정론과 음모론의 친화성은 지적되어 왔지만, 서로를 연속하는 사상 또는 정치적 태도로서 분석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두 개가 어떻게 교차하고, 결합하고, 영향을 주고받는지, 아직 종합적인 견해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그것은 역사 부정론이 역사 인식 해체 또는 새로운 구축으로 정치적 목표 달성을 시도하는 데 반해, 음모론은 최종적인 도달 목표를 결여한 것처럼 보이는 데 이유가 있는지도 모른다. 앞에서 기술했듯이, 음모는 폭로된다, 또는 성취해 버리면, 이제 음모가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음모론에는 명확한 도달점이 없고, 늘 ‘미완’의 언설처럼 보인다. 그러나 음모론이 애당초 음모의 저지와 폭로 등을 의도하지 않고, 오히려 음모를 의심함으로써, 의사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면, 두 개는 사실은 같은 방향을 향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양자의 유사성은 먼저 인식론적인 차원에 있다.
첫째, 양자 모두 ‘진실’은 왜곡되고, 은폐되어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진실’을 은폐하는 것은, (외국) 정부나 경제계, 학자나 미디어 같은 지적 엘리트 등의 권력이며, 이러한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특정 견해를 확산한다고 여긴다. 사람들은 현재의 세계가 역사의 필연적 귀결처럼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는 항상 승자가 기록하고, 패자는 그것을 수용하도록 강요당한다는 역사관도, 이런 종류다. 승자가 역사를 쓴다는 점에서는 반드시 잘못이라고 할 수 없지만, 패자의 역사 인식이 승자의 음모 결과로 설명될 때에는(예를 들면 승자의 ‘세뇌 프로그램’으로 죄악감이 심어졌다 같은), 주의가 필요하다.

이런 인식에서, 역사적 ‘진실truth’은, 늘 역사적 ‘사실fact’보다 상위의 것으로 평가되었다. ‘사실’조차 세상 일반에게는 한정적으로만 열려 보이는 법이어서, 역사적 ‘진실’에 도달하는 것은 한층 곤란하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추구하며 싸우는 것은, 바로 도덕적 의리 문제가 된다. 찬성하는 사람은 자신을 권력으로 빚어진 부정과 싸우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일종의 사명감을 느낀다. 이것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둘째, 양자 모두 역사의 흐름과 세계의 존재 방식을 설명하는 플롯이 앞에 있고, 이것에 맞춰 과거에서 원인을 찾는다. 우리는 누구도, 자신이 믿는 것과 바라는 결론이 모순되지 않는, 또는 신념을 보강하는 정보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신념은 옳다는 생각을 변호할 수 있도록 동기화되어 있는 법이다. 이것들은 사회심리학에서 ‘확증 편향’이나 ‘동기화된 추론’으로 부르는 것이지만, 앞에 있는 동기가 인지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역사 해석에 반입되면, 자신의 추론에 기반을 두고 史實을 선택하고, 자신의 신념에 합치하도록 해석해 버리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관한 착오가 생긴다.

이에 반해 역사학에서는,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역사의 흔적을 찾는 것은 금지한다. 현재의 결과를 설명하는데 필요한 정보만을 요구하고, 현재에서 과거로, 결과와 원인을 선으로 이어서는 안 되는 것은, 역사학의 ABC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역사의 다양한 지점과 시점에서 존재했을 복수의 가능성 가운데, 역사가 전혀 다른 길을 갔을 가능성에 대해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왜 특정한 선택이 이루어진 것일까, 단순한 우연적 결과일까…, 애당초, 꼭 의도가 있어 결과가 초래되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역사 부정론과 음모론이 사회에 작용한다는 점에서 말하면, 세 번째 공통점은 언설 확산의 구조에 있다.   

역사 부정론과 음모론은,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항에 대해, ‘정말로 사실인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실제로는, 그것들은 ‘질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묻는 쪽이 자신의 설이 정당하다는 증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질문은 내지만 회답은 하지 않음으로써, 입증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고, 반박당하고 있는 인상을 회피한다. 이것은 하나의 전술이며,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상대의 인식 불안정을 의도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이 정당하지 않을 가능성을 암시받으면 동요한다. 집요하게 ‘정말로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느냐’고 반복해 질문을 당하면, 자신감이 떨어진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 라고 하지 않는가,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사실이 있는 건 아닐까, 반신반의하게 된다. 인식에 동요가 생기면 파문처럼 확산되고, 일단 싹튼 의심은 완전히 없앨 수 없다.

이런 상황이 생기는 것은,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에 커다란 지식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지식의 전문화․세분화가 진전된 현대, 우리는 뭔가 확증을 가지고 부정하는 것도 긍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뭔가 특정한 견해를 객관적․과학적으로 여기고, 다른 것을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인지, 그 기준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다. 그 때문에, 역사가와 과학자 같은 전문가의 의견을 신뢰하도록 촉구된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국민 투표 같은 것이며, 지지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지식 격차에 대해, 부정론과 음모론은 ‘모르는 것은 당신 탓이 아니다’라고 속삭인다. 왜냐하면, 특정 견해에 공인을 부여하는 것은 권력이며, 일반인의 손은 진실에 닿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 번째 공통점은, 부정론도 음모론도 일단 사회에 나오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이, 왜 이런 비합리적인 언설이 오래 생존하는 지, 의문에 사로잡힌다.  실제로는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과학적인 언설과 그렇지 않는 것의 차이는, 반증 가능성 유무에 있다. 실증할 수 없는 것은, 반증할 수 없다. 어떤 주장의 틀림을 증거로 증명할 수 없으면, 그 정당함도 또한 증거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고, 또한 반증도 당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사 부정론과 음모론으로 결론이 나는 것도 없다. 그 결과, 언설은 반쪽짜리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타나서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일을 반복한다.

■ 거짓 등가성

역사학적 연구 성과의 축적으로 확립된 역사 해석과 역사 수정주의와 역사 부정론이 가리키는 역사는, 같은 갈래가 아니다. 그것은 방대한 과학적 자료에 기초한 기후 변동론과 기후 변동 부인론이 같은 차원의 언설이 아닌 것과 같다. 그러나 왜 명확히 질이 다른 것이, 같은 무대에 오르게 되었을까.

‘거짓 등가성false equivalence’이라는 사고가 있다. 뭔가 공통하는 요소를 근거로, 전혀 성질이 다른 것을 논리적으로 등가라고 간주하는 오류를 의미한다. 구체적인 예를, 텍사스주 하원 법안 3979호를 둘러싼 논의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9월 발효된 이 법은, 텍사스주 공립학교의 공민公民 수업에서 다루는 주제와 방식에 관한 것으로, 개별 정책과 사회 문제 등, 현재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의견 대립이 있는 주제를, 교사가 수업에서 다루도록 강제하지 않는다고 정해져 있다. 남북 전쟁과 인종 차별의 역사 등, 미국사의 취급 방식을 마음속에 두고 있는데, 이것들을 다룰 경우에는, 특정 견해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대립하는 견해도 우열을 정하지 않고 가르칠 것을 요구한다. 극단적인 표현을 하자면, 노예제의 ‘긍정적인’ 측면도 가르쳐야 한다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비판이 많았다.

이것이 큰 문제가 된 것은, 텍사스의 어느 학교 교무 담당자가,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도 대립하는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라는 지침을 내놓았을 때였다. 그러니까 역사 수정주의와 부정론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비판의 목소리를 수용해, 교장이 “홀로코스트에 ‘또 하나의 측면’ 따위는 없다”고 사죄하는 사태가 빚어졌지만, 이것은 바로 ‘거짓 등가성’의 가면을 쓰고, 거짓 역사와 사이비 과학이 뒷구멍으로 들어오는 예일 것이다.(“In one Teas district, teachers were told to give ‘opposing’ views of the Holocaust,”National Public Radio, October 15, 2021.)
 
일찍이 미국 남부의 학교에서, 생명의 탄생과 인간의 진화를 높은 차원의 ‘의지’를 지닌 존재로 설명하는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을 진화론과 함께 가르친다는 생각이 났다.

많은 논자가 지적하듯이, 학술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등가가 아닌 언설이 옆에 나란하게 되어 버리는 사태의 배경에는, Post Modern 사상의 영향, 또는 그 곡해가 있다.[예를 들면 Lee McIntyre의 『Post-Truth』(『포스트 트루스 - 가짜 뉴스와 탈진실의 시대』, 두리반, 2019년)]

역사는 과거에 관한 표상에 지나지 않고, 역사 기술이 과거에 일어난 일의 증명이 되지 않는다면, 역사서와 역사 소설의 차이는 없어진다. 테사 모리스 스즈키Tessa Morris-Suzuki가 일찍부터 지적하고 있지만,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도, 이러한 Post Modernism을 모방해 왔다.(『과거는 죽지 않는다―미디어․기억․역사』, Tessa Morris-Suzuki, 2014년)

또한 1990년부터 주류화 되어(또 political correctness화 했다고 생각된다) 다문화주의적인 가치 상대론이 악용되는 면도 있다. 이제까지 역사를 권력자와 다수파가 기술해 왔다는 반성에서, 마이너리티와 억압당하는 사람의 역사가 굴기되는 가운데, 상황은 다수파의 시각에서만이 아니라, 반대편의 시각에서도 봐야 한다는 의견이 수용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다면적인 시각에 대한 요청을 역으로 이용해, 역사 기술의 기준을 채우지 못한 언설이 무대에 올라온 것이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라고 주장하며, ‘양론 병기’를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역사에 관해서는, ‘양론 병기’란 ‘거짓 등가성’에 다름 아닌 것이 많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역사의 ‘定說’이라고 하는 것은, 방대한 사료의 실증적 분석의 축적으로 형성된다. 복수 해석이 비교되고, 수정되고, 통합된 결과로서, 과거는 대략 이러했을 것이라는 합의에 이른다. 이 때문에 역사 연구의 중요한 부분은 연구사의 분석에 있다. 이제까지 어떤 해석이 이루어져 왔고, 이것에 대해 자기 논설의 새로운 점이 어디에 있는지, 연구의 총체 속에 자리매김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것에 비해, 역사 기술이라는 외관만 가졌을 뿐, 실제로는 정치적일 뿐인 언설에는, 연구사가 결여되어 있다. 연구의 축적으로 이루어진 해석이 아닌 거니까 당연하다. 말하자면, 양론 병기를 요구하는 ‘역사의 또 하나의 견해’에는, 애당초 논의의 여지 따위는 없는지, 전문적으로는 오래 전에 결론이 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역사의 ‘定說’은, 이유가 있어 수용되고 있다.

■ 맺는 말

홀로코스트 부정론이 북미에서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 역사가 데보라 에스더 립스타트Deborah Esther Lipstad는 부정론자와는 논의하지 않는 것을 자신의 방침으로 삼았다. 이유는, 바로 거짓 등가성의 가면을 쓰고 뒷구멍으로 들어 온 부정론자가, 자신의 논설을 역사 연구 옆에 나란히 놓는 것을 걱정하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녀는, 2000년에 부정론자 데이비드 어빙David Irving과 “역사가 피고석에 세워졌다”고 평해졌던 재판을 벌여 승소했다.

지금, 역사 부정론이나 이것과 결합한 음모론을, 일부 주변적인 의견으로 무시하면 괜찮은 것일까, 사회가 자문하기 시작했다. 비판하기 위해 문제를 삼으면 확산될 가능성이 있지만, 거꾸로 수수방관하면, 모르는 사이에 역사 연구와 과학과 어깨를 나란히 할 가능성도 있다. 부정론과 음모론 처지에서는, ‘양론 병기’에 도달한 시점에서 이미 크게 승리한 셈이다.

유럽 국가들 가운데 일부는, 이러한 혼동이 일어나지 않는 체제를 만들고 있다. 바로 홀로코스트, 제노사이드, 인도에 반하는 죄 같은 역사적 사실의 부정이나 부인을 범죄화한 것이다(물론 음모론에 대한 규제는 아니다). 역사에 관한 ‘표현’을 금지한다기보다, 역사적 사실을 부정․부인하는 것을 통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명예와 존엄을 손상시키는 ‘행위’를 금지한다. 말하자면, 표현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보호되어야 할 역사의 언설에서, 부정론을 분리하고, 증오 발언으로 처벌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 규제는, 부정해서는 안 되는 ‘공적인 역사’를 국가가 정하는 것도 의미해 커다란 위험을 수반한다. 먼저 국가나 정부가 불리한 역사 기술을 배제하는 수단으로 삼을지도 모른다. 또한 요 몇 해 동구 국가들이, 나치 독일의 범죄에 더해,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이루어진 범죄의 부정도 금지한 것에 대해, 러시아가 강하게 반발하듯이, 현실의 외교 문제로 발전하는 일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옥석이 뒤섞인 상태로 사회에 범람하는 역사 언설에도, 명백한 질적 차이가 있다는 점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 대한 기술이라 해서, 모두 가치가 같은 것은 아니다. 다각적․중층적인 역사 연구와 외교적인 ‘역사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준비된 단선적인 역사는, 질․의의 모두 같지 않다. 개중에는 학술적․교육적인 실적을 무로 돌려야 할, 나쁜 언설도 있다. 이 때문에 역사 기술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은, 그 사실을 가지고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누가 지적할 것인가. 이것이 역사가의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그런 언설의 유통 매체가 되어 있는 미디어의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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