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칼럼] 왜 인간을 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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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왜 인간을 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을 까
  • 김덕권
  • 승인 2021.11.12 0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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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상에서 가장 ‘사회적’인 생물은 개미라고 합니다. 퓰리처상을 받은 책 ‘개미세계의 여행'을 보면, 앞으로의 지구는 사람이 아니라 개미가 지배할 것이라는 다소 생뚱맞은 주장을 펼칩니다.

그 근거는 개미들의 희생정신과 분업능력이 인간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개미는 굶주린 동료를 절대 그냥 놔두는 법이 없습니다. 그럼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개미는 위를 두 개나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자신을 위한 ‘개인적인 위’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인 위’인 것입니다.

굶주린 동료가 배고픔을 호소하면, 두 번째 위에 비축해 두었던 양분을 토해내서 먹이는 것입니다. 한문으로 개미 ‘의(蟻)’자는 벌레 ‘충(虫)’자에 의로울 ‘의(義)’자를 합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위도 개미처럼 두 개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랬다면 인류는 굶주림의 고통을 몰랐을 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 딱 하나의 위만 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굶주림의 고통이 닥쳐올 때, 닭보다 더 무자비한 행위도 서슴지 않곤 합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놀라운 일은 위가 한 개 뿐인 인간들이 때로는 위를 두 개나 가진 개미들보다 더 이웃의 아픔을 자기 일처럼 감싸왔다는 사실입니다.

얼마 전, 대형할인 매점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모두 카터에 물건들을 가득 싣고 분주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이 할인점 안에서 불행한 사람은 없어 보였습니다. 한 주부도 바쁘게 할인점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일주일치 식품을 사는 김에 남편 선물로 튼튼해 보이는 새 등산화를 샀고, 아들 녀석을 위해서는 특별히 큰 맘 먹고 녀석이 그토록 목매어 사달라고 조르던 ‘인라인 스케이트’를 샀습니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계산대 역시 북적거렸습니다. 어림잡아 한 20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지루하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바로 앞에 서 있는 여섯 살 쯤 된 여자아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옷은 초라하게 입고 있었지만 눈매가 총명했으며 착하고 똘똘해 보였습니다. 그 주부의 눈길을 한 번 더 잡아 끈 것은 그 아이가 들고 있는 작은 꽃병이었습니다.

‘저 꽃병 하나 사려고 이렇게 오래 줄을 서 있다니. 아이 엄마는 어디 갔지?’ 그 아이는 입을 꼭 다문 채 가만히 기다리고 서 있다가 자기 차례가 오자 깨질세라 꽃병을 자기키 높이만한 계산대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습니다. 계산원은 기계적으로 바코드에 식별 기를 갖다 댔고 가격을 말해줬습니다.

“6천 8백 원이다.” 아이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 물었습니다. “6천 8백 원 이라고요? 이상하다 4천원이라고 써있었는데?” “네가 선반에 붙은 가격표를 잘못 봤구나. 위쪽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봐야 하는데 밑에 있는 가격표를 봤구나.” “4천 원밖에 없는데,” 아이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보기가 딱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지켜봤습니다. 순간 그 주부는 계산대에 눈길을 고정시키고 가만히 있는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이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자 그녀 뒤에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의 불평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빨리 빨리 합시다. 뭐 이렇게 오래 걸려요.” 계산원도 거들었습니다. “어떻게 할 거니? 다른 걸 골라 오든지, 아니면 집에 가서 돈을 더 가지고 와라.”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보다 못한 그녀가 얼른 천 원짜리 세 장을 계산원에게 내밀었습니다.

“이걸로 일단 계산해 주세요.” “아 아이를 아세요?” “아니요. 그냥 해 주세요.” 계산이 끝나자 아이는 계산대 옆에서 그 주부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계산을 한 후 카트를 밀고 나오자 아이가 내 앞으로 와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아이는 조그만 손으로 거스름돈 2백 원을 내밀었습니다.

“그건 놔둬라. 그런데 엄마는 어디 가셨니?” 물어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도저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는 지난여름에 돌아가셨어요.”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습니다. 그녀는 순간 당황했지만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럼 너 혼자 이 꽃병을 사러 왔니?” “지난번에 엄마 산소에 갔는데 엄마 산소 앞에만 꽃병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럼, 아빠하고 같이 오지 그랬니?” “아빠는 병원에 계세요. 집에는 할머니밖에 안 계세요.” 무슨 보물이나 되는 것처럼 꽃병을 가슴에 안고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늦은 시간까지 일원상(一圓相) 앞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제발 그 아이가 더 이상 큰 아픔 없이 잘 자랄 수 있게 도와주십사 하고요.

어떻습니까? 아무려면 사람이 개미 보다 못할까요? 인간에게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측은지심은 인간의 본성(本性)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로, 다른 사람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이릅니다. 어찌 인간을 일러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을 까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11월 1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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