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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우리가 배워야 할 사회적 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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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칼럼] 우리가 배워야 할 사회적 예절
  • 김덕권
  • 승인 2021.10.01 0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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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연일 코로나 19 전염병이 사상 최고치를 돌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4단계 거리두기를 엄히 지켜야 할 시민, 젊은이들이 유명 해수욕장이나 계곡, 공원 등을 막론하고 인산인해를 이루어 ‘생활 속 거리두기’가 실종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언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나라가 예의는 물론 질서까지 무너져 개판 5분전의 사회를 보는 것인지요? 여간 가슴이 아픈 것이 아닙니다. 제가 젊은 시절 ‘권투프로모터’ 생활을 한 관계로 일본을 자주 왕래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을 갈 때마다 저는 일본 사람들의 생활태도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지요.

일본! 생각해 보면 정말 싫고 미운 나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갈 때마다 한 가지 더 고약한 감정, 무서움이 추가되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원수가 될 필요는 없지만, 이길 수 없는 나라가 원수로 남아있는 것은 국가적 재앙이 아닐 런지요?

그런 일본인들의 가치를 결정해주는 몇 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알아봅니다. 바람에 날려 온 가랑잎 하나도 광장에서 볼 수 없습니다. 물론 담배꽁초 한 개비도 길거리에서 구경할 수 없었지요. 사람들이 작은 비닐봉투를 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심지어 씹고 난 껌을 싸서 버리는 휴지도 같이 들어있습니다.

웬만해서는 길거리에서나 시내 도심에서, 고속도로에서 일부러 수입 외제 차량을 찾으려 했지만, 거의 볼 수가 없어 두려움이 앞서곤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는 차 열대 중에 외제, 수입차가 과반인데 비하면 자유무역 협정이 무색하도록 철저한 배타주의의 일본 민족성이 소름 끼치도록 무서워졌습니다.

등굣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골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고학년의 큰 학생들이 횡단보도 양쪽에서 깃발을 들어 차를 세웁니다. 길 양쪽에서 저학년의 어린 학생들이 줄지어 서있는 차량을 향해 동시에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고, 고사리 손을 흔들며 차례를 지켜 질서 정연하게 길을 건넙니다.

아이들이 길을 다 건넌 것을 확인한 후 차량의 어른들도 웃으며 경적으로 답례를 합니다. 이 얼마나 인간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아름다운 사회의 시민 정신인가요? 가정에서 가르치는 일본 어린이들의 사회교육에 관한 극히 일부분을 예로 이런 것도 있습니다.

바로 <오아시스> 정신을 길러 주는 것입니다.

오 : 오하요우 고자이마쓰! 아침인사, ‘안녕하세요.’라는 말입니다.

아 : 아리가또우 고자이마쓰! 감사합니다.

시 : 시쯔레이 시마쓰! 실례합니다.

스 : 스미마셍! 죄송합니다.

이 ‘오아시스’라는 덕목을 이들은 어려서부터 입에 달고 삽니다. 일본인들은 길을 가다가도 자주 뒤를 돌아본다고 합니다. 혹시 자신이 뒤따라오는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하는 배려하는 마음에서이지요.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강남의 귤을 강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얘기지요. 일본과 한국 중에 어디가 강남인 줄은 잘 몰라도 한국에는 왜 아직 탱자만 열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한국의 강남땅에 어서 빨리 일본처럼 ‘오아시스’를 만들어 어린 귤나무를 많이 심어야 하지 않겠는지요?

제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잠들어 있는 ‘닛코(日光)’를 다녀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일본의 성지에서 값 비싼 선물을 샀었지요.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산을 내려오다가 구두끈이 풀려 다시 맨 다음 깜빡하고 그냥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산 아래 버스터미널에서 번쩍 정신이 들어 허겁지겁 선물을 찾으러 산을 다시 올라갔습니다.

이미 시간이 상당히 지나 선물은 벌써 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선물은 고스란히 그 자리에서 저를 반겼습니다. 감동이 아닌가요? 우리 이렇게 이길 수 없는 원수를 영원히 옆에 두고, 어찌 발 뻗고 편히 잠들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이런 사소한 사회적 예절이라도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교육시킨다면 우리에게 이길 수 없는 적은 없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모르면 서로 비기고(知彼不知己 一勝一負), 적을 모르고 나를 모르면 싸울 때마다 지며(不知彼不知己 每番必敗),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런 ‘배워야 할 사회적 예절’하나 못 지키고 유명 관광지에 가서 난장(亂場)을 치는 한, 일본은 우리를 만만하게 여기고, 반성은커녕 점점 기고만장하여 못된 침략근성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산하에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 미증유의 코로나 사태에 꼭 관광지를 찾아 술판을 벌리고 개판을 쳐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배워야 할 사회적 예절’부터 잘 지키고, 힘을 길러야 극일(克日)은 물론 승일(勝日)의 길을 갈 수 있지 않을 런지요!

단기 4354년, 불기 2565년, 서기 2021년, 원기 106년 10월 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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